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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전통음악은 8• 15 광복 이후에 만들어진 <아쟁산조〉도 포함하고 있으며, 심 지어 〈사물놀이〉는 1978년에야 처음 선을 보인 음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 통음악 속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이들 음악의 형성배경과 그 내용, 나아가 표현양식이나 표 현방식 등의 여러 요소들이 전통적인 음악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쟁산조>는 표 현매체인 악기만 산조아쟁이라는 새로운 악기를 사용할 뿐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산조음악을 그대로 잇고 있으며, 〈사물놀이〉는 농악이나 무속음악의 리듬적인 요소를 실내음악으로 재구성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1930년대에 시작되어 1960년대 이후 활발해진 창작국악(신국악)은 '국악'의 일부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이를 전통음악'이라 하지 않는데, 이는 이 음악이 전통적인 방식에 의한 '악곡 만들기'가 아니라 서구식 작곡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새로운 악곡을 만들 때 연주자들이 기존에 연주하던 악곡을 바탕으로 이를 변화시켜 새로운 곡목을 확충한 데 비하여, 창작국악은 작곡가가 개인의 창작의지에 따라 음악을 새롭게 구성하고 이를 악보 에 기록하면 연주자가 기록된 악보를 재해석하여 자신의 음악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 이 같은 작곡 및 연주방식은 서구 예술음악의 경우를 답습한 것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전통음악이라 할 수 없으나 국악기를 사용하고 국악적인 매체나 표현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악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창작국악의 일부 흐름은 비록 국악의 일부인 것처럼 통용되기는 하지만 실상은 국악으로 보기 어려운 음악도 있다. 앞서 한국인이 만들고 한국 음악인이 연주하지만 그 음악양식이 외래음악의 틀을 따르고 있는 경우 진정한 한국음악으로 볼 수 없다고 한 바와 같이, 비록 한국인, 특히 '국악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작• 편곡하여 국악 기로 연주하고 한국어 가사로 노래할지언정 그 음악의 양식이 외래음악의 양식을 주로 답습 하고 있다면 이는 전통음악이 아니며 국악에도 포함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테면 가야금 으로 연주한다고 해서 비발디의 〈사계〉나 파헬벨의 〈캐논>이 한국음악일 수는 없다는 말이 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음악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국악, 그중에서도 전통음악의 이론을 다루 고자 한다.《 I. 전통음악의 분류. 》
한 나라의 음악문화는 주변 지역의 음악문화와 단절되어 형성될 수 없다. 우리 음악의 경우도 인접한 여러 나라(중국·몽골· 일본 등)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성되었고, 중앙아 시아나 인도•서남아시아 등의 먼 나라와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다. 뿐만 아니 라 통치 이념을 달리하는 왕조에 따라서, 또는 사회계층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음악문화가 형 성되었으며, 지역이나 음악의 장르에 따라서도 그 특징을 조금씩 달리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형성된 전통음악의 장르는 시대에 따라서, 또는 분류하는 관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구분되어 왔다. 조선시대의 궁중음악은 아악• 당악• 향악으로 구분하기도 하 였고, 근래에는 궁중음악과 조선시대 지식인 등 지배계층의 음악을 정악으로, 토속적인 향토음악과 전문음악인들의 예술성이 높은 음악인 기층민중의 음악을 민속악으로 양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음악의 성격과 내용, 연행 및 감상담당층 등의 구분 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오늘날에는 전통음악 이외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창작음악의 양이 늘어나고 있으며, 창작 음악의 종류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창작음악에 대한 보다 정밀한 분류가 필요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하므로 창작음악에 대한 구분은 별도로 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에서 채택하게 될 전통음악의 분류체계는 다음과 같다.1. 궁중음악
현재 전승되는 궁중음악은 대부분 조선 후기의 궁중 의식음악이다. 이들 음악은 궁중의 각종 의식에서 부수음악으로 연주되던 것으로, 의식의 성격에 따라 제례악• 연례악 • 군례악 등으로 분류되기도 하였으며, 음악의 계통을 따라 그 양식적 특징과 성격을 중심으로 향악•당악·아 악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궁중음악은 그 시대 그 나라의 가장 세련된 전문음악가들이 참여하여 만들고 연주하던 음 악이다. 또한 국가의 권위나 왕실의 품격을 드러내는 음악으로서 한 나라의 통치철학이 반영 된 음악이기도 하다.(1) 향악
조선시대 궁중음악 가운데 향악기가 중심이 되어 연주하던 음악이다. 대표적인 향악기로는 가야금과 거문고가 있지만, 조선 후기 궁중음악은 관악기가 주를 이루는 편성이었으므로 대 표적인 악기로 향피리• 대금• 해금 등이 편성된다. 오늘날 전승되는 대표적인 향악에는 <정읍과 <동동>처럼 고려시대의 궁중음악으로서 조선시대의 궁중을 통하여 전승된 음악도 있고, 조선시대 궁중무용의 반주곡으로 연주되던 음악도 있다. 이들 음악은 궁 중의 의식이나 연향에서 연주되었으며 편종과 편경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큰 특징이 있다.(2) 당악
당악이란 본래 '당나라의 음악'이란 뜻으로, 현재 전하는 당악곡은 단 두 곡뿐이며 이들은 모 두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에 전해진 음악이다. 주로 궁중의 의식과 연향에서 연주되었으며, 당 정재(중국풍의 궁중무용)의 반주로 쓰였다. 현재 연주되는 악곡은 〈낙양춘>과 <보허자> 두 곡이다. 당악은 편종• 편경과 관악기들의 합주로 연주되는데, 당피리가 주선율을 이끌며 연주한다.
(3) 군대음악현재 전하는 <대취타〉는 조선시대 궁중이나 각 군대의 영문에 소속되어 어가의 행차나 군대의식에서 연주하던 음악이다. 태평소가 유일한 선율악기로 가락을 연주하며, 용고• 자바라• 대금 등의 타악기와 나각• 나발 등의 관악기로 연주하는데, 이들 타악기 와 관악기는 군대의 신호용 악기이기도 하다. 현재 전승되는 대취타는 국가무형문화재의 하 나로 지정되어 있다.